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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주 오래전 친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10대 시절, 어딘가에 항상 소속되어야 마음이 편했던 그 시절에 서로 비슷한 취향과 흥미를 가진 친구들끼리 모여 무리 생활을 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며칠 전 나에게 연락을 준 그 친구 또한 내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공통점이 많았고 어울리는 친구들이 겹쳤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두 학년 동안 꽤나 친하게 지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각자 원하는 고등학교를 지망서에 지원하였고 그렇게 모두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갑작스럽게 적응해야 하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친하게 붙어 다니던 친구들과의 연락이 점점 뜸해졌지만 가끔씩 서로의 안부를 물어가며 잘 지내고 있는지, 대학교는 어디로 가기로 했는지 등을 물으며 지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로도 가끔씩 만나기는 했었지만 중학교 시절에 함께 놀았던 것처럼 끈끈한 무언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서로에게는 그냥 친구라는 이름 두 글자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성인이 되고 난 뒤로는 안부를 묻는 연락조차 1년에 한두 번 할까 말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 뒤로는 서로의 생일도, 안부도 챙기지 않는 그런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냥 어딘가에서 잘 살겠지 하는 마음과 함께 나도 내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고, 어린 시절에 그토록 중요했던 '무리 생활'은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며 온갖 경험을 한 나에겐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랬기에 갑작스럽게 아무런 날도 아닌 날에 연락을 해온 친구가 무척 낯설고 당황스럽기만 했다.
문자가 왔다. 답장을 보내야 하나?
처음 문자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아예 연락을 안 하고 산 지 5년도 훨씬 넘은 것만 같은데 갑자기 그것도 내 전화번호를 몰라 '00이 맞아? 나 000이야'라는 문자를 받았다. 처음 문자를 받고 '아니 얘가 무슨 일로 연락을 했지?'라는 마음과 함께 '아, 답장할 마음이 안 생기는데....'라는 귀찮은 마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래도 어찌 사는지 궁금했으니 일단 답장을 보내보기로 한다. 몇 번의 문자가 오고 가다가 나는 결론을 내렸다. 연락을 안 해야겠다고.
필요가 없다.
그동안 나의 개인적인 생일이나 안부를 묻지도 않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한다? 둘 중 하나가 분명할 것이라 생각했다. 곧 결혼하거나, 다단계 거나. 둘 다 별로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물론, 그저 내가 정말로 궁금하고 만나보고 싶어서 한 연락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친구의 안부를 몇 년 동안 한 번도 묻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므로 내가 정말 보고 싶어 연락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접어두기로 한다. 영양가 없는 연락은 그만두기로 했다.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기쁜 마음으로 연락에 응하며 만남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만남이 나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확신과 그 친구가 없어도 지금껏 내 인생을 잘 살아오고 있었기에, 굳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연락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연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그 잠깐의 고민 속에 있던 시간들이 오히려 나를 속 좁고 옹졸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만 같았다.
결론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이다.
나는 연락을 안 하기로 결론을 내렸지만, 이런 고민으로 이 글을 클릭하고 읽고 있다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된다. 왜냐면, 나처럼 '연락 안 해야지!' 하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이미 이런 연락들은 영양가가 없다는 걸 경험한 사람일 것이고, '아, 그래도 옛날에 정말 친하게 지냈었던 친구였는데, 연락이 먼저 왔으니 한 번 만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사람은 이런 영양가 없는 연락을 아직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본인의 선택이니 말리지는 않겠다. 다만, 갑작스러운 연락에 응해 만나기 전, 기대하는 마음은 잠시 내려놓기를 바란다. 그리고 글을 다 읽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고민이 된다면 그 친구 없는 인생이 어땠는지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의외로 '친구'라는 것이 그렇게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지 않은가? 성장기 시절에는 '소속감'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크게 다가오기 때문에 '친구'라는 무리 생활에 끼어들지 못하고 겉돌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며 나의 성향과 생각까지도 그 소속집단에 맞춰지는 일들을 경험한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등등...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다 보면 친구라는 것이 학창 시절만큼 나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점이 올 것이다. 한마디만 더 하자면, 연락을 받고 만날까 말까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당신의 삶에 영향가가 전혀 없는 친구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